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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칼럼] 당연시해 온 기대와 믿음이 사라지는 세상
작성자 : 총장메시지 관리자 작성일 : 2023-09-07 09:15:01    조회수 :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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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일보: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30903010000194
 


 아침에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 어느새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걷기 좋은 계절이다. 강변을 따라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마음을 가지곤 한다. 문득 오래전 청년 시절에 선진국을 방문했을 때 도시의 마을마다 잘 정비된 공원과 여기저기에 키 큰 나무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우리도 마을마다 멋진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편하게 걷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서 좋다.

 지난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사건 사고가 잦았다.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하였다. 단시간에 좁은 지역에 강한 비를 쏟아붓는 폭우가 산사태와 하천 범람으로 이어져 피해가 더 커졌다. 지구 환경 변화가 이제 우리 일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걱정된다. 자연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잘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당연하게 기대해 온 믿음이 무너진 충격이 무엇보다 크다.

 우리를 힘들게 한 일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벌건 대낮에 도시 한복판에서 칼을 든 범죄자가 길 가던 선량한 시민을 공격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SNS에는 칼부림을 예고하는 청소년들의 글이 줄줄이 게시되었다.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면서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배척되는 매정한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대한민국의 한 편에서 청년 세대의 좌절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왔고 어느새 사회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여러 일들을 당연시하며 지낸다. 길을 나설 때면 신호등은 정상 작동할 것이고 사람과 차는 교통신호를 지키며 움직일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행동할 것이며 위기가 발생하면 앞장서서 행동하고 책임질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이유 없이 남을 적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이런 일들은 누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여름은 우리가 당연시해 온 많은 것이 생각보다 쉽게 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가 평온한 일상에서 당연시해 온 기대와 믿음은 무슨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지켜온 것들에는 국가와 사회가 만든 명시적인 규칙도 있고 사람들끼리 묵시적으로 정한 약속도 있다. 내가 반갑게 인사하면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대략 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그 사정을 들어주는 것으로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다.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건강한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해 온 믿음이 무참하게 깨지고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 공적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일정한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지위에 맞는 행동과 어울리는 말이 있다. 사건 사고 그 자체보다 당연시해 온 믿음이 배반당한 것이 더 걱정된다. 잘 정비된 산책로와 멋진 편의 시설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연한 일은 당연한, 그런 무심하고 평범한 일상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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